영국 전시회에서 넷제로 건축과 건축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다
- 넷제로 건축은 순환 경제 원칙에 따라 건축 자재를 재사용 또는 재활용하여 자재와 매립 공간 절약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 고급 기술을 이용한 적응형 재사용 프로젝트는 런던의 배터시 발전소(Battersea Power Station)를 비롯한 넷제로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 넷제로 사고방식을 구축하려면 건축업계의 노력과 더 나은 사례를 시행하고 장려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플라스틱은 전염병과 같다. 조지아 대학교 연구자들에 따르면1950년대 이래 사람이 만들어 낸 플라스틱 양이 80억 미터톤 이상이라고 한다. 이 대학은 2017년 연구에서 지난 60년 동안 생산된 플라스틱 중 9%만 재활용됐고 79%는 매립지나 자연에 버려졌다고 밝혔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2050년까지 대략 120억 미터톤 상당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매립지나 자연에 버려질 것이다.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RIBA)의 전시 큐레이터 피트 콜라드(Pete Collard)는 오염과 기후 변화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면 병, 상자, 가방에 그치지 않고 건물까지 재활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라고 말했다.
“다른 많은 산업과 마찬가지로 건축, 엔지니어링, 건설(AEC) 업계도 선형 경로를 따른다. 재료를 소비하고, 제품을 만들고, 제품을 버린 다음 새것을 구입한다. 이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콜라드는 말했다. 콜라드는 2022년 11월 RIBA의 런던 본사에서 ‘Long Life, Low Energy: Designing for a Circular Economy(긴 수명, 낮은 에너지: 순환 경제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회를 2023년 4월 1일까지 후원한 오토데스크와 RIBA의 협업은 순환 경제 원칙이 보다 지속가능한 넷제로 건축양식을 만드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보여준다.
“토지에는 가치가 있고, 새 건물을 짓기 위해 기존 건물을 허무는 데서 얻는 금전적 이익이 증가하고 있다”고 콜라드는 말했다. “우리는 재사용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합니다. 새로운 건물은 언제든 지을 수 있지만, 기존 건물이나 그 안에서 찾은 부품과 재료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이를 통해 원자재 사용을 멈추고 매립지를 가득 채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건물을 허물면 대단히 많은 폐기물이 발생합니다.”
순환 경제 원칙을 채택하는 것은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략상 중요하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수는 2022년 11월 80억 명에 이르렀고, 2050년에는 그 수가 거의 100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증가하면 전 세계 건설업계에서는 하루 평균 1만3000개의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 공급망 중단이나 노동력 부족과 같은 문제를 마주한 건설업계가 어떻게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신축에만 의지하면 불가능할 수 있다. 복원, 보수, 보강, 재사용 등 ‘순환’ 설계와 건설이 경제와 환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콜라드는 “분명 지금 심각한 기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전 세계가 이전 세대가 남긴 유해한 유산을 깨닫고 있다. (중략) 그 결과, 업계로서 우리는 사용할 자재 종류와 설계 및 건축 방법을 더 많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RIBA의 전시가 보여주듯 점점 더 많은 건축 업체가 정확히 이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업체들은 재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기술 솔루션을 사용하며 순환 경제가 건축 환경에 제공하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혁신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유산을 구축하고 있다.
피닉스 하우스, 역사적 잿더미에서 되살아나다
‘Long Life, Low Energy(긴 수명, 낮은 에너지)’ 전시회에서 소개된 프로젝트 중에는, CSK 아키텍트(CSK Architects)가 주도한 영국 윈저 소재 피닉스 하우스(Phoenix House)가 있다. 이 건축물은 2024년에 완공될 예정이며, 두 명의 전 영국 총리가 살았던 18세기 대저택 부지에 있다. 전 소유주였던 프란시스 배리 경(Sir Frances Barry)은 1872년에 이 저택을 구입하여 성 레오나르드의 언덕(St. Leonard’s Hill)이라고 불렀다. 1920년대 배리 경이 사망한 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불만이 많았던 아들이 저택을 팔고 싶어했지만 팔 수 없었다. 그렇게 되자 아들은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집을 폭파시켰다. 흩어진 건물 잔해는 이 때부터 윈저성이 내려다보이는 그림 같은 언덕 위에 남아 있었다.
현재 소유주인 앤드류 트라이(Andrew Try)는 CSK에게 세인트 리어나드 언덕의 잔해에서 회수한 자재를 사용하여 옛 저택의 토대 위에 건물을 짓도록 의뢰했다. 완성된 건물은 U자형으로 디자인된 넷제로 중정형 주택이 될 예정이며, 원래 있던 저택 중 유일하게 남은 부분인 유서 깊은 석조 주랑 현관을 디자인에 통합한다.
CSK의 R&D 소장인 건축가 매튜 바넷 하울랜드(Matthew Barnett Howland)는 “원래 저택 중 남겨진 부분은 DNA 조각과 같아서, 기괴한 프랑켄슈타인 방식으로 DNA 조각을 사용하여 새로운 집을 다시 만들고 있다. 이 부지에는 수백 년 간 몇 개의 건물이 있었지만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됐는데, 그 남은 잔해를 모으고 다시 합쳐서 새로운 것을 건축해낸다”며 "대단히 이색적인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CSK는 영국 런던대학교 바틀렛 건축대학(Bartlett School of Architecture at University College London)과 함께 부지에서 돌을 발굴하고 닦아서 개수를 센 후 3D 디지털 스캔을 통해 회수된 자재의 ‘디지털 채석장’을 만들었다.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건축가들은 디지털 재고목록에 있는 돌을 섞고 조합하여 마치 가상 젠가 게임을 하는 것처럼 미적, 구조적으로 완전하게 재조립할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해당 팀은 이 절차를 사용하여 거친 자연 상태의 돌과 육면체로 자른 매끈한 돌을 혼합하여 상인방 구조의 석조 주랑 현관 프로토타입을 설계하고 구축했다.
하울랜드는 “우리 석공들에 따르면 보통 재사용 비율은 30%”라며 “따라서 석조를 1톤 받는 경우 완성된 건물에 1/3 톤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보다 신중한 과정을 통해 재사용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 기술이 없었다면, 눈 앞에 큰 돌이 놓여 있어도 어떤 돌이 서로 가장 잘 어울릴지 알아내려고 상상하고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라며 “조각의 디지털 재고목록을 사용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구축할 수 없는 맞춤형 요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울랜드는 기존 자재를 활용하는 대신 처음부터 구축하면 “더 쉽고 빠르고 비용도 대략 10% 정도 저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억과 역사라는 빈티지의 측면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자원과 탄소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피닉스 하우스의 경우에는 둘 다 약간씩 해당합니다.”
넷제로 프로토타입, 배터시 발전소
‘Long Life, Low Energy(긴 수명, 낮은 에너지)’ 전시회에서 선보인 또 다른 프로젝트는 배터시 발전소(Battersea Power Station)다. 런던 템스강에 위치한 석탄화력 발전소인 이 발전소는 1950년대 확장되고 1983년 해체되었다가 여러 차례 재개발에 실패한 후 2022년 다시 문을 열었다. 한때 우중충하고 버려졌던 이 곳은 현재 대규모 공원, 고급 사무실, 아파트, 레스토랑, 상점, 헬스 클럽, 세련된 호텔을 포함한 주상복합 건물이 되었다.
약 17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프로젝트는 애플 같은 유명 기업 사무실과 캘빈 클라인, 랄프로렌 등의 매장을 유치했다. 건축가, 역사학자, 환경운동가들은 배터시 발전소를 완전히 파괴하는 대신 재창조하기로 한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윌킨슨에어(WilkinsonEyre)의 건축가들이 주도한 이 계획은 이 건물의 원래 건축가인 자일스 길버트 스콧 경(Sir Giles Gilbert Scott)과 J. 테오 할리데이(J. Theo Halliday)가 수립한 본질, 스타일, 규모를 존중한 채 현대적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건물의 모든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네 개의 상징적인 흰색 굴뚝을 살펴보자. 이 굴뚝들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했기 때문에 인부들이 힘겹게 해체해야 했고, 1930년대와 1950년대 사용했던 기존 공법을 사용하여 원래 사양대로 조심스럽게 재건축됐다. 이제 방문객들은 내부에서 사우스 아트리움(South Artrium)의 거대한 유리 천장을 통해 굴뚝을 보거나 혁신적인 유리 엘리베이터인 리프트 109(Lift 109)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 런던 스카이라인의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다.
한편, 발전소의 원래 구조를 구성하는 벽돌은 600만 개인데 그 중 많은 수가 풍화되고 손상되었다. 이 벽돌을 복원하기 위해 배터시 발전소 개발회사(Battersea Power Station Development Company, BPSDC)는 발전소의 원래 석조부분을 만들었던 벽돌업체 두 곳을 찾아 기존 벽돌과 어울리는 수제 벽돌 175만개를 새로 의뢰했다.
다른 인상적인 부분으로는 터빈 홀(Turbine Hall) A와 B가 있다. 터빈 홀 A에서는 예전 갠트리 기중기와 바닥의 벽돌에 있는 옛 터빈 기계 자국이 특징으로, 본래 아르 데코 양식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복원했다. 터빈 홀 B에서는 예전 제어실의 다이얼과 스위치가 1950년대 테마 술집 제어실 B(Control Room B)의 장식으로 바뀌었다.
윌킨슨에어의 프로젝트 매니저 세바스티앙 리카드(Sebastien Ricard)는 “발전소에 있는 기존 구조물을 최대한 재사용했다”며 “새로운 자재가 필요한 경우 영국에서 기존 구조물을 조달하여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많은 경우 기존 구조물은 필요한 구조로 강화되었지만, 건물의 역사를 보여주는 특이사항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상태로 유지됐다”고 말했다.
해당 팀은 프로젝트의 많은 요소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기존 구조에 대한 광범위한 3D 포인트 클라우드 조사를 실시하고, CAD 소프트웨어와 오토데스크 Revit(레빗)을 사용하여 2D 및 3D 모델을 만들고, 만든 모델 위에 새로운 건설 요소를 입혔다.
리카드는 “기술은 건설과 관련된 모든 당사자가 동시에 정보를 받아 직렬이 아니라 병렬로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BIM(빌딩 정보 모델링)은 설계 단계에서 정보를 통합하여 다양한 시나리오의 영향을 평가하고 개발 과정에서 지속가능성 전략을 유의미하게 시험할 수 있기 때문에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BPSDC의 CEO 사이먼 머피(Simon Murphy)는 2019년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앤 컴퍼니(McKinsey & Company)와의 인터뷰에서 수백 명의 건축가와 엔지니어, 80개 이상의 전문건설업체, 3천 명에 달하는 현장인력을 조직화하는 복합 건물 프로젝트에 BIM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공업체, 건축가, 엔지니어는 모든 건설 단계에서 전체 프로젝트의 3D 디지털 모델에서 작업했다.
현저한 사고방식의 변화
콜라드는 피닉스 하우스, 배터시 발전소와 기타 유사한 프로젝트가 자재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건축하도록 영감을 주기 바란다.
“순환경제라는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현대 건설에서 사용된 자재는 보통 분해 및 재사용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콜라드는 말했다. “재미있게도 건물이 오래될수록 더 많이 재활용하거나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에 가면 로마제국 시대의 건물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데 이 건물들은 돌 덩어리로 지어졌고 돌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중략) 고대 유럽 도시에서는 건물에 사용된 돌 덩어리를 분해해서 새로운 건물에 사용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또는 아시아의 디자인을 생각해 보자. 콜라드는 “극동지역 건축에서는 목재 구조를 사용하는데, 많은 경우 잇거나 고정하는 부품이 전혀 없이 만들어진다”며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기 위해 설계하는 문화가 있다. 똑같아 보이지만, 약간 더 새로운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환 경제 원칙을 구현하려면 고대 건물 사례를 참조하여 건물에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콜라드는 “건물을 수명이 다하면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분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설계하고 건축해야 한다”며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이 Revit과 같은 툴로 자재와 건축 방식을 문서화하면 후임자들이 보다 쉽게 재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콜라드는 이어 “이를 위해 자재의 수명과 다음에 자재를 사용할 사람을 고려하는 현저한 사고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 규제기관은 건물이 에너지 사용을 통해 배출하는 탄소와 내재 탄소를 관리하는 법과 정책을 수립하여 도움을 줄 수 있다.
리카드는 “개조와 재사용을 하면, 새 건물에서 동일한 공간을 건축하는 데 일반적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중요한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따라서 내재 탄소에 가격을 매겨서 효과적으로 철거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한,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며 “30년 후에 중간 업그레이드를 통해 60년 또는 90년까지 설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데 건물을 30년짜리 디자인으로 지을 이유가 없다. 이는 많은 기업 고객들이 자산평가에 채택하는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술을 통해 건축가들은 지식과 정확성, 협업을 개선하여 과거의 낭비가 심한 건설 방식과 미래의 보다 효율적인 건설 방식 간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콜라드는 “특히 재사용 프로젝트의 경우, 건물이나 자재를 타인에게서 물려받아야 하기 때문에 무엇을 사용하여 작업하는지 알아야 하고 해당 정보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종사자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기서 기술은 필수적이며, 오래된 건물을 새 건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