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생성형 AI로 영감과 디자인을 연결한 기아글로벌디자인

이미지 제공: 기아글로벌디자인.
  • 기아글로벌디자인은 2022년부터 1년 간 디자인 분야의 생성형 AI 활용 방안에 대해 오토데스크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콘셉트 디자인용 AI 솔루션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 디자이너는 생성형 AI 도구를 통해 스케치 시간을 줄이고 아이디어를 더 빨리 확인하여 디자인 의사 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
  • 오토데스크 BlankAI(블랭크AI) 등 디자인 분야의 AI 도구가 계속 발전함에 따라 디자인에서 AI 기술은 갈수록 중요해질 전망이다.

전체 디자인 프로세스의 시작 부분에 해당하는 콘셉트 디자인은 프로세스 내내 발전시켜 나갈 초기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단계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 디자인과 자료를 참조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존 자료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불확실성 속에서 창의성이 꽃을 피우는 디자인 프로세스의 백미지만,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 때문에 디자이너를 힘들게 하는 병목 구간 중 하나이기도 하다.

AI를 활용해서 이 병목 구간을 해소할 수는 없을까? 서보호 기아글로벌디자인 책임연구원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서 책임은 “초기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디자이너 입장에선 정말 창작의 고통이 많이 따르는 부분”이라며 “이 부분에서 많은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할 수 있는 AI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개발 의도를 설명했다.

기아글로벌디자인은 챗GPT로 인한 생성형 AI 열풍이 불기 전이었던 2018년부터 이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관련 기술을 연구해 왔다. 그러나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AI 도구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없었고, 맞춤형 솔루션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2020년 오토데스크 측에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 수년간의 준비 끝에 기아글로벌디자인은 서 책임의 주도 하에 2022년 9월 초부터 2023년 8월 말까지 약 1년 간 오토데스크와 ‘영감과 디자인을 연결하다(Bridge Inspiration and Design)’라는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생성형 AI를 콘셉트 디자인 업무 프로세스에 접목하는 솔루션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기존 워크플로우와의 긴밀한 통합

생성형 AI 휠 디자인 솔루션은 특징적인 키워드와 초기 콘셉트 스케치를 활용하여 다수의 이미지를 생성한다. 그러면 디자이너가 이를 가다듬어 최종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다. 이미지 제공: 기아글로벌디자인.

기아글로벌디자인과 오토데스크가 개발한 AI 솔루션의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디자이너가 솔루션에서 원하는 디자인 키워드를 선택한다. 예를 들면 ‘대담한’, ‘역동적인’, ‘세련된’, ‘단순한’, ‘스포티한’, ‘최첨단’ 등이다. 그런 다음 자신의 초기 스케치나 영감이 될 만한 참고 이미지를 업로드하고 ‘디자인 생성’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선택한 키워드와 업로드된 스케치를 바탕으로 유사한 이미지가 다수 생성된다.

여기서 디자이너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미세 조정해 나갈 수 있다. 기본 스케치에 더해 영감을 가져올 콘셉트 이미지를 추가하고, 그 이미지에서 어떤 부분을 어느 정도 참고할지 구체적으로 선택해 가중치를 설정할 수도 있다. 생성되는 휠 이미지의 대칭 수 같은 매개 변수도 조정이 가능하며, 생성된 이미지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그 이미지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새롭게 생성할 수 있다. 이렇게 디자이너가 능동적으로 솔루션과 상호 작용하면서 이미지를 조정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솔루션의 특징 중 하나다.

이는 디자이너의 실제 워크플로우를 최대한 반영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산업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디자인을 고안하기에 앞서 해당 디자인의 콘셉트가 될 키워드를 선정하고, 이 키워드와 잘 어울릴 만한 외부 이미지 등 참고 자료를 찾는다. 이렇게 참고 자료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수많은 이미지를 스케치하며 빠르게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것이 콘셉트 디자인 과정의 일부다. 이번 생성형 AI 솔루션은 여기서 ‘수많은 이미지를 스케치한다’는 부분을 대신 처리해 준다.

서 책임은 “디자이너가 반영하고자 하는 시각적 특징을 담은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하고 이를 참고로 삼아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이 과정은 디자이너가 실제 작업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솔루션은 프로토타입임에도 디자이너들로부터 사용이 간편하고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호평을 받았다.

AI로 병목 구간 해소

이번 공동 연구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은 예왕 오토데스크 수석 연구원이 서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기아 디자이너들에게 프로토타입을 소개하고 있다. 이미지 제공: 기아글로벌디자인.

이처럼 사용이 간편하면서 효과도 뛰어난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서 책임을 필두로 한 기아글로벌디자인과 기술적인 측면을 담당한 오토데스크의 긴밀한 협업 덕분이었다. 서로가 생소한 디자이너와 연구원으로 이뤄진 이 팀의 최우선 과제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서 책임은 “예왕(Ye Wang) 오토데스크 수석 연구원의 주도 하에 10명 안팎의 오토데스크 리서치 Industry Futures(인더스트리 퓨처스) 연구원들과 매주 회의를 하면서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지, 디자이너의 업무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했다”며 “연구팀으로부터 구체적인 질문들을 굉장히 많이 받았고, 연구원들이 이해하기 쉽게 디자인의 기본 요소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돌이켰다.

뿐만 아니라 팀은 보다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에 대한 관점을 파악하기 위해 기아글로벌디자인 측 디자이너들을 섭외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오토데스크 연구 팀과 1인당 약 1시간의 심층 인터뷰를 갖게 했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는 모두 솔루션 개발에 활용됐다. 기초 스케치를 바탕으로 키워드와 참고용 이미지, 매개 변수 조정을 통해 다수의 원하는 이미지를 얻어낸다는 솔루션의 기본 골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고안됐다.

서 책임은 “디자이너의 업무는 굉장히 다양하다. 빠르게 많이 스케치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공들여서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최선의 결과물을 선택하는 의사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물리적으로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서 의사 결정의 질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AI의 한계와 향후 과제

이번 프로젝트의 AI 모델 아키텍처는 사용자 입력, 이미지 데이터 세트, 오픈 소스 디퓨전 모델을 통합한다. 이미지 제공: 기아글로벌디자인.

물론 아직까지 AI의 한계는 명확하다. 산업디자이너의 수많은 업무 가운데 AI가 개입 가능한 부분은 초반의 콘셉트 디자인, 그중에서도 일부 과정에 불과하다. 서 책임은 AI의 한계와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디자인에 아무 쓸모 없다는 무용론도, AI가 뭐든지 다 해 줄 것이라는 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책임은 “디자인 프로세스에는 디자이너들이 어려움을 겪는 병목 구간들이 곳곳에 있다”며 “모든 작업을 AI가 할 수는 없겠지만 프로세스 중간중간에 있는 병목 구간에 AI가 개입해서 이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2D 이미지를 3D 모델로 변환하는 것이다. 3D 모델링 자체가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기도 하고, 3D 모델링에 능숙하지 않은 디자이너도 있기 때문에 이를 AI에 맡길 수 있다면 상당한 시간이 절약될 것이다. 본래 이번 프로젝트에도 생성된 2D 이미지를 3D 모델로 자동 변환하는 기술까지 포함됐으나, 실무에 활용하려면 3D 모델의 품질 향상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에 최종 보고에서는 제외됐다.

그러나 서 책임은 “향후 투자와 기술 개발이 이뤄진다면 이 기술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전망의 근거는 AI 기술의 빠른 발전이다. 얼마 전까지는 AI의 한계라고 했던 점들도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하면서 금세 극복된다. 예를 들어 오토데스크 AI 연구소는 최근 Project Bernini(프로젝트 버니니)를 통해 2D 이미지, 텍스트, 복셀, 포인트 클라우드 등을 입력받고 3D 모델을 생성하는 기술을 공개했다. 아직 실험 단계지만 오토데스크는 이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해 다양한 업체와 제휴하여 개발을 계속할 방침이다.

이처럼 대규모 기술과 자본이 투입된 파운데이션 모델이 늘면서 생성형 AI 활용을 위한 진입 장벽도 낮아지고 있다. 서 책임은 “이전에는 학습시킬 데이터가 아주 많아야 AI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기반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 구축하는 수고를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 책임은 이어 “워크숍에서 오토데스크 BlankAI(블랭크AI)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데, 관련 데이터를 전혀 학습시키지 않았음에도 특정 자동차 이름을 프롬프트로 입력하자 해당 자동차와 유사한 이미지가 생성됐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별도로 우리 측 데이터를 학습시키지 않고 오픈소스인 버서타일 디퓨전(Versatile Diffusion) 모델을 그대로 활용했음에도 충분히 실용적인 성과가 나왔다”며 “이처럼 다양한 AI 도구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능력이 디자이너에게 굉장히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필자 소개

이기준은 프리랜서 기자 겸 번역가다. 중앙일보, 포브스코리아 등의 매체를 거치며 기자 경력을 쌓았다. 국제 정세와 첨단 기술, 지역 사회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현재 Design & Make with Autodesk 한국어판의 에디터를 맡고 있다.

Profile Photo of Kijun Lee - KR